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면 인공지능이라 부를 수 있는 건가요?
● 앨런 튜링(1950)은 현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입니다.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장치로 메시지를 암호화했습니다. 도청은 쉬웠어도,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죠. 튜링은 이를 풀기 위한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기계가 만드는 암호는 기계가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독일군에 맞선 연합군의 승리를 견인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 튜링이 고안한 '이미테이션 게임'은 오늘날 '튜링 테스트'로 불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와 대화를 했을 때, 내가 사람과 대화했는지 기계와 대화했는지 구분이 안된다면 그 기계는 인공지능이라고 부를 수 있어!라는! 게 골자입니다. 음.. 그렇다면 인간적인 사고와 행동까지는 잘 모르겠고, 합리적 사고(..)도 사실 잘 모르겠고, 백번 양보해서 '합리적 행동' 정도만 되어도 인공지능이라고 인정해주자는 말인 것 같습니다. 지금 봤을 때는 기준이 좀 약한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만, 튜링 테스트가 고안된 때가 1950년임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전자계산기보다 못한 컴퓨터가 조금씩 세상에 등장하던 그때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 그 당시에는 대단한 것이었는데, 지금에 와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린 케이스가 너무 많습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다행히 인류는 Homo Scriptus 여서 기록을 통해 망각을 보완합니다만(..) 그 당시의 상황과 맥락을 잊고, 지금의 맥락 속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누를 곧잘 저지릅니다. 그래서 역사를 바라볼 때, 그 당시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의 기준에서는.. 인공지능 정도 소리를 들으려면.. 스스로 판단하고, 자가발전하고, 메타인지 정도는 가지고 있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수준의 강 인공지능이어야 하겠죠. 튜링 테스트와 비슷하지만 지금의 기준을 반영한 비슷한 실험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이 실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 그런데 튜링 테스트와 비슷한 실험이 있습니다. 존 설(1980)이 고안한 '중국인 방' 실험입니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죠. 시간이 흐른 만큼 인공지능에 대한 관점이 좀 달라집니다.
● 상상해봅시다.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영국인이 방안에 들어가 중국어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을 중국어로 유창하게 내놓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영국인은 중국어를 잘하는 것일까요? 아니? 잘하는 것은 둘째치고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 대답은 No 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합리적 행동'정도만 되어도 인공지능으로 인정해주자는 '튜링 테스트'의 개념과는 정반대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머신러닝과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인공지능은 앨런 튜링의 생각처럼 여전히 '합리적 행동'을 하는 기계입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이야.'라고.' 튜링은 생각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인공지능이야..'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죠. 특이점 주의자인 레이 커즈와일과 같은 부류들은 중국어 방 실험을 비판합니다. 이렇게요.
● 중국인 방이라는 컴퓨터 시스템은 인공지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각 부품으로 봤을 때는 전혀 중국어를 이해한다고 볼 수 없지만 어쨌든 각 부품이 연결되고 종합적으로 작동하여 중국어를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면(..) 상관없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한국말을 하지만 저의 뉴런과 신경 세포 전달 물질이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다만 우리 뇌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제대로 동작하고 기능할 때, 우리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할 수 있습니다.
● 물론 중국인 방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것이 인간적인 사고와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튜링 시대의 사람들보다 눈이 높아진 거죠. 게다가 우리는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기능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대학에서 로봇을 연구하는 어느 분께서 이런 말을 하셨던 게 생각납니다. '로봇 하는 사람으로서 갖는 자격지심인지는 모르지만... 다들 너무 쉬운 것만 선점하고선 전부 다 되는 것 마냥 떠드는 걸 듣는 게 마음 편하진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무책임한 약속을 남발하고, 한 탕에 큰 걸 노리는 것보다는 현실에 기반한 빠르고 점진적인 개선이 더 낫습니다. 이를 우리는 '애자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의 머신러닝과 딥러닝으로 구현한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 말입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는 지혜로운 하루 되십시오!
● 알파고 그 이후는?
●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인공지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폭발시켰습니다. 그런데 알파고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잠시 잊혔던 그 이후의 알파고의 행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구글의 자회사인 딥마인드의 수장인 데미스 허사비스의 마인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바둑을 연구한 까닭은 데이터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는 단순히 바둑을 잘 두는 알파고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알파고는 바둑 이외의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는 공통의 플랫폼과 같은 것이며, 바둑 이외에 체스, 장기, 일반 게임, 나아가 일반적인 문제를 풀 수도 있게 될 것입니다. 알파고는 인공 일반 지능의 시작입니다."
● 음(...) 데미스 허사비스의 꿈이 단순 약인 공지 능의 개발에 있지는 않았군요. 그는 역시나 야망이 있는 남자였습니다. 알파고(2016) 이후에 '알파고 제로(2017)'가 나옵니다. 여기서 제로(Zero)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바둑 기보 즉,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와! 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이 현대 인공지능의 요체인데 '데이터' 없이 학습했다니요?! 이렇게 72시간 학습 후,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를 100대 0으로 제압하죠. 사실 이 알파고 제로가 이세돌 이후에 알파고에게 도전장을 덤빈 중국 기사 커제를 가볍게 상대한 버전의 인공지능이었습니다.
● 딥마인드는 그 후 얼마 되지도 않아, '알파 제로(2017)'를 만듭니다. 알파고에서 '고(Go)'는 바둑을 의미합니다. 즉, 바둑뿐 아니라 모든 게임을 잘하게 하는 게 목표인 인공지능입니다. '알파고 제로'의 범용 버전인 셈이죠. 실제로 '알파 제로'는 바둑, 체스, 일본 장기인 쇼기를 마스터했습니다..
● 여기까지의 인공지능들은 모두 게임의 규칙을 사전에 입력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바야흐로 2020년 '뮤 제로'가 발표됩니다. 뮤 제로의 특징은 게임의 규칙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백지상태에서 스스로 게임의 규칙과 보상을 터득해나가는 겁니다. 관찰하여, 규칙을 파악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를 '관찰학습'이라고 부릅니다. 이 '관찰학습'은 미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범용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학습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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